02 Feb

Class 0. ‘이계의 문’은 무엇인가?


  “갑자기 시작하는 건가요?”


  비아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디휴를 쳐다보았다. 디휴는 이미 준비를 끝내고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뭐가 더 필요한가요?”


  디휴는 오히려 비아티에게 질문했다.


 “필요한 걸 물어보는게 아니라, 느닷없이 시작해서 그런거죠.”


 “오프닝 쇼를 준비했는데 싫다고 했잖아요.”


  디휴가 자켓 안주머니에서 색색의 가렌드를 꺼내들었다. 계속 내버려두면 비둘기나 토끼를 꺼내들 기세였다.


 “그건 너무 과해서 그런거고요. 됐어요, 그냥 이렇게 진행해요.”


  비아티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저는 ‘차원 방랑자’ 디휴입니다. ‘세계의 지도’를 완성할 자이며, 비아티의 안내자이기도 하죠.”


  디휴의 소개가 끝나자 어디선가 작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렸다. 뽐내기 좋아하는 디휴가 준비해둔 효과음이었다.


 “‘세계학자’ 비아티(bE’aty)입니다.”


  반면 비아티는 담백하게 끝내버렸다. 디휴는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리며 비아티를 쳐다보았다.


 “너무 불친절하잖아요. 적어도 ‘세계학’이 무엇인지 설명 해줘요.”


  둘에게 꽤나 친숙한 개념이지만, 온 우주를 통틀어 볼 때 ‘세계학’은 널리 알려지 학문은 아니라는걸 비아티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지적당한 것이 부끄러운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마치 고향의 학교에서 첫 수업을 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차원들이 존재합니다. 그 수많은 차원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궁극에는 우주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세계학’이죠. 이 ‘세계학’을 처음 창시했던 문명은 우리의 연대로 말하면 대략 만 이천…….”


  흐름을 탄 비아티의 설명이 점점 길어지자 디휴가 박수를 두 번 쳐서 맥을 끊었다.


 “... 그래서 저는 세계학자로서 ‘두 개 이상의 차원을 동시에 연결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구를 디휴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비아티의 소개가 끝나자 다시 한번 디휴가 준비했던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기술은 이미 있는 기술이잖아요?”


 “정확히는 유실된 지식이라고 해야죠.”


  비아티가 책 한 권을 꺼내들어 둘 사이에 놓여진 탁자 위에 펼쳤다. 그러자 펼쳐진 책 위로 별처럼 반짝이는 점들이 떠오르더니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들이 나타났다.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다가 이내 ‘문’과 비슷한 그림이 나타났다.


 “오늘 소개할 ‘이계의 문’입니다.”


  디휴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이 그림은 정확한 묘사는 아니에요. 이제까지 제가 모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상상화에 가깝습니다.”


 “어차피 ‘이계의 문’은 차원마다 다르게 구현되잖아요. 이게 제일 원형에 가깝다고 합시다”


 “원형에 가까운지도 확실치도 않고…”


 “그래서 이 ‘이계의 문’은 어디서 만들어진 거죠?”


  디휴가 비아티의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매사 자기멋대로인 디휴의 태도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따금 불쾌감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는 ‘가스’이고 자신은 ‘물’이라서 그런가 싶다. 잠시 상념에 빠졌던 비아티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계의 문’은 사실 굉장히 미스테리한 유산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없거든요.”


 “그것과 관련해서 방랑자들 사이에서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죠!”


  신이 난 디휴가 한껏 재잘거렸다.


 “강자를 사랑하는 신이 주최하는 경기가 있는데, 그 경기장으로 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합니다. 최후의 승리자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하는데, 어떤 방랑자는 이 경기에 참여하려고 ‘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추적하고 있어요.”


  비아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번이고 비아티가 반박했지만, 디휴는 그 허무맹랑한 농담을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곧잘 저 헛소리를 지껄여 댔다.


 “디휴, 도대체 실력 있는 방랑자이면서 그런 말을 왜 퍼트리고 다니는 겁니까? 애초에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 된 것….”


 “만들어진 곳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이 ‘문’에 대해서 비아티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비아티, 어서 말해줘요.”


  디휴의 정신없는 진행때문에 비아티가 준비한 순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야기가 꽤나 허술해진 탓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디휴가 몇번 더 재촉하자 비아티는 그제야 펼쳐둔 책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공중에 떠 있던 그림이 사라지고 서로 다른 각도로 뻗어나간 선들이 나타났다.


 “이 파장은 ‘이계의 문’이 내보내는 특수한 신호입니다. 보통 이런 고유한 신호는 특정 매개체만 인식이 가능한데, ‘이계의 문’의 신호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인식할 수 있어요.”


 “그러면 모두가 ‘이계의 문’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이계의 문’의 신호를 받아들인 생명체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꿈이라는 단어에 디휴의 어깨가 살짝 쳐졌다. 그에게 꿈은 생소한 것 중 하나였다. 개념은 잘 알고 있지만 체험한 적이 없어서이다. 그의 생물학적 구조는 꿈을 꿀 수 있는 종류가 아닌 탓이었다. 


 “이 신호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생명체 중에서도 또 일부만이 ‘이계의 문’의 출현 위치와 시기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 고향에서도 과거 한 번 열렸었던 탓에 그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덕분에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되었죠.”


 “정말 운이 좋았네요.”


  비아티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세계학자 중에서도 자신처럼 ‘이계의 문’과 접촉했던 기록을 가진 자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계단’이라든가, ‘고행의 문’과 같이 종교적인 의미로 기록해서 재해석하는데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비아티가 가진 기록은 그런 것들과 다르게 가장 근대적인 언어로 정리되어 있었고, 덕분에 남들보다 더 정확하게 ‘이계의 문’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기록만으로는 ‘이계의 문’의 연구를 계속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하고, 더 다양한 기록이 필요한데 다른 학자들이 좀처럼 공유해주지 않아서,”


 “위기에 빠진 비아티를 돕기 위해 제가 나타난거죠.”


  또 다시 박수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디휴의 주변으로 꽃가루도 휘날렸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단서를 찾지 못해서 저를 찾아와놓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시네요.”


  비아티가 드믈게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디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우아하게 팔을 흔들었다.


 “저는 비아티가 인정한 것처럼 실력 있는 방랑자로서 아무리 조잡한 단서여도 ‘균열’을 해석하는데 탁월하죠. 비아티의 단서는 마치 먹다남은 빵과 같아요. 하지만 나는 그 빵을 통해 만들어진 가게, 만든 날짜까지 알아낼 수 있어요.”


  약간의 허세가 가미되었지만, 대부분 사실이라 비아티는 별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디휴의 ‘탐색’ 능력은 비아티가 여태껏 듣거나 보았던 방랑자들 중에서도 상위급에 해당했다. 디휴가 가진 도구들도 훌륭하지만, 감각 자체가 뛰어났다. 자칭 ‘세계의 지도를 완성할 자’라는 자신감이 바로 그런 능력을 근거로 두고 있다.


 “비아티의 말대로 ‘이계의 문’이 내보내는 신호의 파장은 무척이나 독특해요. 접촉했던 차원에 흔적을 남길 정도로 특수하죠. 이 흔적을 따라 저와 비아티는 ‘이계의 문’을 조사하러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얇은 빛 하나가 디휴를 조명했다. 작은북을 두드리는 소리도 멀리서 들려왔다. 효과를 대체 몇 개나 준비했는지 궁금했지만, 비아티는 묻지 않기로 했다.


 “이 여행의 목적을 짚어주시죠, 비아티.”


  디휴가 멋대로 탁자위로 올라서서 손을 내밀었다. 비아티는 디휴의 신발에 밟히기 전에 펼쳐두었던 책을 집어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그의 행동을 무례하다고 꼬집어말해도, 도통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계의 문’이 열렸던 차원으로 가서 문에 대해 아는 자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문을 넘어간 자들의 정보도 얻을 수 있겠죠.”


  여행의 목적을 떠올려본 비아티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목소리도 조금 높아졌다.


 “자, 그럼 여행을 떠나볼까요? 준비 되셨나요?”


 “지금 말이에요?”


  분위기가 너무 고조되었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이 구는 디휴의 모습에 비아티는 다급해졌다. 당장 여행을 떠나기에 아직 준비 못한 것이 많았다.


 “아뇨, 밥 먹고 갈 건데요. 비아티 단골 식당으로 갑시다.”


 얼이 빠진 비아티의 표정을 보며 디휴는 키득거렸다. 그리고 박수를 두번 치자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였다.

  분위기가 너무 고조되었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이 구는 디휴의 모습에 비’아티는 다급해졌다. 당장 여행을 떠나기에 아직 준비 못한 것이 많았다.

 “아뇨, 밥 먹고 갈 건데요. 비’아티 단골 식당으로 갑시다.”

 얼이 빠진 비’아티의 표정을 보며 디휴는 키득거렸다. 그리고 박수를 두번 치자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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